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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고문게임, 어른들의 집단 히스테리

by 슈슈뱀 2010.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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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게임이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게임의 내용은 사람의 양팔을 묶어 공중에 매달아 놓고 전기톱, 못, 사포 등으로 고문하는 내용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고 벌써부터 인터넷에 고문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나 역시도 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하는 것 처럼 이런 게임이 과연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판타지와 현실


위 장면은 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이다. 이 영상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현실 가능한 장면? 아니면 판타지?


똑같은 질문을 해보겠다.
이 사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현실 가능한 장면? 판타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판타지와 현실을 구분 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어느 얘기에 나오는 것처럼 그림을 보고 날아들어 죽는 새가 아니라 허와 실을 구분하는 영리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떠한 것에 영향을 받아 실행을 옮길 때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 현실성 있는지를 따지게된다.
그렇다면 위 사진을 보고 어떤 것이 가장 현실성 있게 느껴지는가?
만약 전자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귀신이다. 이미 따라해보다가 죽었다는 얘기이다.


폭력의 첫 시작은 가정에서 배운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잘못된 영향을 주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과정에 대게는 외부적인 곳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정에서 일어난다. 바로 부부싸움 말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서 독립적인 무리에 속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4년 길게는 6년의 시간이 지난 뒤 부모와 떨어져 집단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천사같이 착하기만하고 순수했던 아이가 부모와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전에 보지 못한 행동을 보인다면 그 원인이 위탁하고있는 교육기관만의 잘못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몇년의 시간 동안 부모와 같이 지내며 하나의 공동체로서 생활한다. 그런 사이 가장 먼저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사람은 부모이다. 그런데 이 과정 중에 문제가 생긴다.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무런 의식없이 보는 앞에서 사소한 다툼들을 하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을 어느 것보다 더 쉽고 빠르게 받아들인다. 머리가 아닌 느낌으로 말이다.
어른들은 하나의 문제로 다툼이 벌어지면 흔히들 머리가 아파온다는 표현처럼 이것저것 모든 것을 다 대입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선 그저 다투는 모습 그 자체가 공포이다.
아이들은 단순해서 웃으면 좋아하는 것이고 찡그리면 미워하는 것이다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횟수와 상관없이 아이들에게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충격으로 다가오며 직접적 체험으로 기억된다.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은 부모와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면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와 떨어진 공동체 생활에서 이해관계에 얽메이게 되는 시점이 되면 그들은 과거 경험했고 학습했던 것을 실행에 옮긴다. 바로 자신의 부모에게서 본 것들 말이다.

흔이 우리 가족은 아이들에게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나쁜 것은 보여주지 않았는데 어디를 가고부터 애가 난폭해졌어요. 어떻게하죠? 하는 부모들이 간과하는 부분이다.
폭력은 부모에게서 처음 배운다는 것을 말이다.


간접 체험이 현실이 되려면?



앞서 말했지만 폭력을 처음 경험하는 곳은 가정이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에 현실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단순히 영화나 게임등에서 나오는 폭력적인 장면이 현실에서 재현되는게 가능할까?

단순히 가능하다고 말한 다면 위 키스 장면을 본 당신은 오래지 않아 성추행범이 되 있을 것이다라고 말 할 수있게 되버린다.

가정을 해보자

A라는 인물이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는 영화를 봤다. 몇년 후 A는 사람을 칼로 죽였다.

A라는 인물이 사람을 죽인 것은 영화를 봤기 때문일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그런 경험이 뒷받침되었다고 말이다. 이 말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결과론 적인 부분에 의한 것이다.

단순히 대상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채소, 과일, 가축 등을 베어내는 용도의 칼을 보면서 사람은 못 벤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A는 영화에서 얻은 간접체험이 꼭 살인의 원인이라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런 사건은 어떻게 접근하나? 일반인이 생각을 해봐도 범행 동기, 피의자의 성장환경 등을 조사하게된다. 그렇게 접급해보면 종합적으로 A의 범행 원인에서 영화는 큰 의미가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간혹 범행 방법을 영화를 보고 모방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모방 범죄를 보고 사람들은 범인이 본 한 매체를 싸잡아 비난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잘못된 것이다. 과거 매트릭스가 개봉됐을 때 미국에서는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매트릭스를 보고 심한 정신적 혼란을 격었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이 현실인지 아닌지 두려웠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매트릭스가 총기 난사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영화를 보고 현실 감각을 상실한 범인의 정신 상태가 이상한 것이지 매트릭스에서 죽여! 죽여! 죽여!라고 외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범인이 총을 들고 쏜게 매트릭스를 보고 배웠다고 말 할 수도없다. 이미 총이란 것은 화약이 발명되고 나서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인식되있는 흔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해피엔딩'에서는 최민식이 전도연의 외도 사실을 알고 헌책방에 앉아 추리 소설을 보며 범죄를 구상한다.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다. 그렇다면 그 관객들은 잠재적인 살인범이 되는 것인가? 당장 조사해서 모두 구속해야할까? 절대 아니다. 세상에는 마이너리티리포트 같은 건 존재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면서 무서워 하는 것은 판타지



아이들에게 귀신을 물리치는 내용의 영화를 보여줘 보자. 대게의 아이들은 그 날밤 잠을 제대로 못 잘 것이다. 무서운 장면이 계속 떠오르기 때문이다. 왜 아이들은 귀신을 물리치는 영화를 보고 귀신 잡는 생각보다 무서운 생각만을 할까?
그것은 과정이나 결과보다 상대하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없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운 것이다.


반대로 위 영화처럼 동물이 나오는 영화를 보여주자. 그렇다면 아이들은 개를 만지고 싶다거나 가지고 싶다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귀신 영화나 동물이 나오는 영화나 내용상 판타지지만 아이들은 동물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 보다 정을 느끼게 되고 현실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편안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도 폭력적인 영상물이나 게임에 노출이되고 이용을 한다 하더라도 그 자신이 감당할 수있는지 아닌지를 판단을 이미 하고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고문게임이 아이들에게 어떤 행동의 원인으로 작용을 하게 된다면 그건 아이가 아니라 현실화가 높은 어른일때 가능할 것이고 또한 고문게임을 하면서 순간적인 쾌감같은건 느낄지 모르지만 현실이되면 무서운 것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건 지구상에 유일하게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이기에 자연스럽게 스스로 치유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자녀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당장 병원에 데려가기 바란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스스로 세상과 벽을 쌓고 살고 있지 않는지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있지 않는지 말이다.

점점 도시화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해지자 인간은 없어지고 사람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당장에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고 간간히 TV에서 죽은지 몇달만에 이웃에 의해 발견되는 웃지못할 뉴스들이 나온다.

결국 어른들 스스로 소통의 장애가 발생하자 외부 자극으로 부터 대응할 방법을 잃게 되고 그게 공포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웃이 성폭행범이라는 뉴스가 뜨면 이웃을 경계하게되고, 아동 납치 방법이 낯선 사람이 말을 거는 수법으로 한다는 얘기에 또 다시 낯선 사람은 무조건 경계해야한다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괴물이 되버리고 불신에 가득찬 어른이 만든 세상에서 도대체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내 아이만 귀하고,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공부를 잘하기 바라고, 다른 아이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길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부모의 사랑일까? 아니면 욕심일까?

나는 욕심이라고본다. 그리고 부모 스스로 이웃을 믿지 못하게하고 친구가 아니라 경쟁상대로 인식하게 하는 부모의 태도로 인해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황폐해져가고있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런 폭력적인 게임 때문에 아이들을 망친다.
저런 드라마 때문에 아이들을 망친다.
저런 교육때문에 아이들을 망친다.

온통 남탓하기 바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안좋게 생각하는 말 한가지 더 하자면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강화해라.

정말 실소가 나올 뿐이다. 남들이 모든 걸 다 해주길 바라는 동안 부모는 뭘 하고있다는 말인가?

부모들은 아이들을 대를 잇기 위한 수단이나 대리 만족의 도구로 생각한지 오래다.
단지 그것을 인정 안할 뿐이다.

아이가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자라길 바란다면 가치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유년기때 부모의 관심이 100%일때 가능하다.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진 시점에는 부모의 영역에서 벗어난 독립적 인격체로서 활동하기 때문에 뒤늦은 관심은 간섭에 불과하다.

게임을 탓하기 전에 게임과 현실을 구분 못할 정도로 정신이 이상해져버리기 전에 자녀들에게 의무가 아닌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이제 그만 남탓하며 자신의 자녀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저런 게임을 할 만큼 방치 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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